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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習_아테나이칼럼/천리마리더십

[허성원 변리사 칼럼]#71 우아한 비즈니스 댄스

by 변리사 허성원 2022. 6. 5.

우아한 비즈니스 댄스

 

지난주에 중요한 협상이 있었다. 스타트업인 고객사의 납품 계약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협상 대리인으로 참석한 것이다. 여러 이견에 대해 거의 합의를 했는데, 마지막 한 조항에서 서로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부딪혔다. 그것은 면책조항이었다. 갑이 을의 제품을 세계 시장에서 유통하는 과정에 특허침해 등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을은 갑을 면책하여 모든 분쟁 절차를 책임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도 배상하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에 대해 을 측의 입장에 서서 을의 귀책임이 확인되었을 때에만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하자고 반박하였다.

비즈니스 계약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이다. 원래 계약이란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가 조건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갑을관계의 계약은 어쩔 수 없이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갑은 우리는 을의 물건을 세계에 팔아준다. 그러니 을의 제품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을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런 생각이 불평등 계약의 근간이 된다. 분쟁이란 건 주로 제3자의 의지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을의 의지나 과실과는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다. 3자의 착오로 인해 혹은 갑의 마케팅을 방해할 의도로 경쟁사가 무단히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호히 말했다. 3자가 일으키는 분쟁은 을이 미리 예측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을에게 귀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분쟁이나 을의 제품 하자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까지 무조건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고 가혹하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의 소송은 경제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포괄적인 면책은 불공정, 불합리한 것이며, 때론 치명적인 독성을 보유한 독소조항이 될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파트너십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욱 힘주어 언급하였다. 계약은 양사 간의 거래를 최초로 성립시키기 위한 신중한 절차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함께 발전할 기초를 닦는 일이다. 그런데 갑은 모든 비즈니스 리스크를 약자인 을에게 떠넘기고 오로지 이익만을 누리겠다고 하고 있다. 그건 큰 회사가 취할 도리가 아니며 그렇게 해서야 어찌 건강한 신뢰 관계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제품의 문제는 을이 책임지고, 마케팅 영역에서의 문제는 갑이 책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허 침해이슈에 있어서는, 침해가 확인되면 을의 책임인 것이고, 침해가 아니라고 확인되면 그건 마케팅의 이슈이니 갑이 책임지면 된다. 이렇게 영역을 나누어 리스크를 분담하여야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신뢰를 굳건히 할 수 있다. 다소 격정을 실은 나의 주장 덕분인지 다행히 상대측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느껴졌다.

비즈니스 관계와 협상은 왈츠나 탱고와 같은 댄스에 비유된다. 이들은 모두 상대 파트너와 함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한쪽만이 즐기고자 하여서는 그 관계의 지속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서로 동일한 음악에 맞춰 동일한 춤을 추어야 하고, 상대를 충분히 잘 배려하지 않으면 이내 발을 밟거나 스텝이 꼬이고 만다. 양측이 살아온 경로가 다르고 체형과 실력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파트너에 대한 우호적인 교감과 따뜻한 배려가 없으면 댄스는 쉽게 망가지고 만다. 그래서 우아한 댄스를 연출하는 것은 비즈니스나 협상의 성공 조건과 일치한다.

댄스파티에서 파트너 없이 홀로 벽에 붙어서있는 사람을 월플라워(Wallflower)라 한다. 벽장식용 꽃이라는 뜻이다. 일단 비즈니스 댄스파티에 함께 왔다면, 나 자신이 월플라워가 되는 민망한 꼴을 보일 수 없다. 동시에 상대를 월플라워로 만드는 무례를 범하여서도 안 된다. 비록 음악과 상대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서로 뜨겁게 춤을 추어야 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탱고를 청하자 망설이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탱고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탱고엔 실수가 없어요. 인생과 달리 단순합니다. 그래서 탱고가 멋진 겁니다. 실수를 하고 스텝이 엉키기도 하지요.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비즈니스 댄스도 마찬가지다. 빈번히 서로 발을 밟고 스텝이 엉키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여 결국 우아한 하모니를 연출해 내어야 하는 일이 바로 비즈니스다. 귀사의 비즈니스 댄스는 우아한가.

 

 

탱고에는 실수란 게 없어요.
인생과 달리 단순합니다. 그래서 탱고가 멋진 겁니다.
실수를 해서 스템이 엉키게 되면 그게 바로 탱고죠.

"No mistakes in the tango, not like life. Simple, that's what 
makes the tango so great.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