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훼(烏喙)는 먹지 마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허성원 작성일18-11-23 11:02 조회1,149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훼(烏喙)는 먹지 마라!
기이불식오훼(飢而不食烏喙)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훼(烏喙)를 먹어서는 안된다.
그것으로 배를 채우면 채울수록
굶어죽는 것과 다름 없는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飢而不食烏喙者爲其愈充腹 而與餓死同患也)
_ 列國志
**
오훼(烏喙)는 '까마귀 부리'라는 뜻으로, 까마귀의 부리나 머리처럼 생긴 오두(烏頭) 혹은 초오(草烏)라는 식물의 뿌리를 가리킨다. 요동(遼東)의 변방에서 이것의 즙을 사냥에 쓰기도 하는 일종의 독약이기도 하고, 두통, 반신불수, 구안와사 등의 치료에 쓰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오훼(烏喙)'라는 단어는 사람의 관상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장경오훼(長頸烏喙)형 인간'이라고 한다. 만화 캐릭터 심슨(Simpson)의 모습이 연상된다.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서 범려(範蠡)는, 장경오훼형 인간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결코 먹어서는 안되는 오훼(烏喙)에는 '씨앗' 즉 종자(種子)가 있다.
씨앗은 굶주린 사람에게 잠깐의 허기를 모면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굶주림의 시간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절망의 고통은 더 클 것이다.
종자란 ‘생명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는 길'(生生之道 _ 燕巖集)이니, 그것은 곧 생명이고 희망인 것이다.
씨앗을 먹어버리는 것은 희망과 생명의 영속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망은 언젠가 그 끝이 있지만,
우리가 언제까지나 결코 잃어서는 안되는 것은 희망이다.
**
또 다른 오훼(烏喙)는 사람들의 '믿음'을 잃는 것이다.
기업이 정말 힘들어졌을 때, 경영자들은 다양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대체로 초라하거나 안타까운 모습이겠지만, 그 중 가장 딱한 것이 주변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은 사업의 몰락이라는 큰 아픔에다 세인의 비난이라는 오명까지 더 얹어 떠나는 것이다.
마지막 정리 단계에서 정말 먹어서는 안되는 '믿음 상실'이라는 오훼를 삼킨 셈이다. 그렇게 해버리고 떠나면 세월이 지나 형편이 나아져 다시 일어나고 싶어도 아무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외로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공자께서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군대, 식량 및 믿음(足食, 足兵, 民信)이라고 하면서, 이들 중 마지막까지 버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였다. 남의 침략을 당하고 배를 굶주리더라도 백성들의 믿음이 남아 있다면 나라가 유지되거나 되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백성의 믿음'은 경영자에게는 함께 비즈니스에 관계했던 직원, 거래처, 고객 등 모든 사람들의 신뢰일 것이다.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의 글.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없이 존립할 수 없다)>
**
배고플 때 '믿음 상실'이라는 오훼를 삼킨 사람은 그 '뒷모습'이 가장 추한 사람이다. 경영자들 중에는 자신의 회사를 부도처리하면서 자신의 재산은 미리 요령 좋게 다 빼돌려놓고 그를 믿고 거래하거나 함께 일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눈물나게 하여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있다.
나태주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뒷모습]
_ 나태주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소리
찌르게기 울음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
산길을 내려가는
야윈 슬픔의 어깨가
희고도 푸르다.
출처: http://dotomari.com/?page=3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