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풂의 황금률과 백금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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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성원 작성일21-07-30 11:32 조회1,1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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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의 황금률과 백금률
밥 빚이나 술 빚은 가볍지 않다. 그저 얻어먹은 일은 잘 기억해두고 적절히 갚아야만 마음 부담도 쌓지 않고 관계도 원만히 유지된다. 베풂도 일종의 거래이기에 균형을 요한다. 그런데 베풂에 대한 입장이나 인식은 양측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때론 원하지 않지만 부득이 주고받고 또 갚아야 하는 베풂도 많다. 베풂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크면 그만큼 불편이나 갈등이 커지게 된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말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대합 그릇으로 오줌을 받아내었다. 어쩌다 등에가 말 등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쫓기 위해 불시에 말의 등을 때렸다. 그러자 말이 놀라서 재갈을 물어뜯고 머리를 들이받으며 가슴을 걷어찼다.”
말의 입장이나 성정을 고려하지 않고 베푸는 입장에서 자신의 정서에 도취되어 행동하면, 아끼는 말에게서 그런 낭패스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하며 몰아붙이는 자녀교육의 현장에서부터, 남녀관계, 직장 생활, 비즈니스 등 온갖 관계에서 베풂에 대한 입장차가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라고 가르친다. 받고 싶은 대로 베풀라고 하니 지당한 말씀이다. 이 말을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거실 벽에 금으로 써붙여두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하여, ‘황금률(golden rule)’이라 불린다. 등에가 몸에 붙으면 누구든 잡아주기를 바랄 것이니, 말 주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에게 베풀었다. 그 행위는 황금률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지만, 말은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황금률이라 하여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가르침이 논어 위령공편에도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성경의 황금률이라는 명제에 대해, 논리학적으로 역(逆), 이(裏), 대우(對偶) 중 이(裏)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이를 논어의 황금률이라 부르기로 하자. 두 황금률은 ‘하라’와 ‘말라’의 차이가 있어, 한 쪽은 적극적이지만 다른 쪽은 소극적이다. 논어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도 응당 그러할 것이니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하니, 역시 지당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설사 누구나 바랄 만한 것이더라도, 시혜자가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베풀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성경보다는 좀 더 진전된 융통성이 있어 보인다. 베풀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말 주인은 행동하기 전에 적어도 한 번 더 숙고할 여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황금률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정작 베풂을 받을 수혜자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시혜자가 원하는 것’을 베풀 것인지 여부만 말하고 있을 뿐, 그것을 수혜자가 원할 지는 묻지 않는다. 때론 베풂이 저항에 부딪히는 난감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점이 보완된 것이 ‘상대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이다. 소위 ‘백금률(platinum rule)’이다. 토니 알레산드라의 책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황금률이 공급자 중심이라면, 백금률은 수요자의 입장에 맞춘 ‘맞춤 베풂’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여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애정과 관심에 기초하여 충분히 관찰하여야만 얻어질 수 있다.
백금률의 맞춤 베풂은 애정과 관심에 기초한 만큼 갈등의 예방에는 효과적이다. 다만 여기서도 아직 베풂 행위기 시혜자의 의지에 따르며 수혜자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 때 주는 음식을 넙죽 받아먹지 않듯이, 상황에 따라서는 받아들임에 저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금률을 좀 고쳐보자. 논리학의 ‘이(裏)’를 적용하여 달리 표현해보면,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베풀지 말라’가 된다. 이에 따르면 수혜자의 입장 확인을 거쳐 베풂의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말라’라고 하는 소극적인 금언이기에,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는 응당 수혜자의 의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백금률이 더 안전하게 가동될 수 있다. 이는 백금률보다 진전된 지혜라 할 수 있으니, 다이아몬드율 혹은 금강석률이라 불러야 할까.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435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