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의동영상] 진문공의 논공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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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성원 작성일22-01-10 10:23 조회8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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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지시와 타산지석
‘옛날 요동(遼東) 지방의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머리가 희었다. 주인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동에 이르니 그곳에서 보이는 돼지는 모두 흰머리였다. 그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요동으로 돌아갔다.' 요동지시(遼東之豕, ‘요동의 돼지’, 후한서)라는 고사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것임에도 견문이 좁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것만 귀한 줄 아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다.
‘흰머리 돼지’를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발명자들이다.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고 특허를 받아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변리사를 찾아온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면 이미 알려져 있는 기술이다. 우리가 상담하는 발명 중 대충 열에 일고여덟은 ‘흰머리 돼지’로 밝혀진다. 그들의 절실한 노력과 기대를 생각하면 얼마나 실망이 클까. 자신만의 사고의 틀에 갇혀 남들의 것을 알고자 하는 노력에 게을렀던 탓이다.
발명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발명의 절대적 가치는 의미가 없다. 그와 같거나 더 우수한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이 세상의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없는 낡은 기술이다. 그래서 특허를 받지 못한다. 공지기술에 비해 새롭고도 진보적인 차별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발명만이 특허를 받는다. 그러니 내 발명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올바른 보호를 받으려면 공지된 남의 기술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남의 돼지들을 잘 알고 있었다면 헛되이 ‘흰머리 돼지’를 안고 하동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기술, 남의 돼지는 타산지석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가이공옥(可以攻玉).' 다른 산의 돌이 나의 옥을 다듬는 데 쓰일 수 있다. 잘 알려진 시경(詩經)의 글귀이다. 옥은 귀한 것이지만 무르다. 옥을 귀한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르고 깎아 곱게 연마하여야 하니, 다른 산에서 나오는 단단한 돌이 필요하다. 흔하고 보잘것없는 남의 것이라 하더라도 나의 귀한 것을 다듬기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발명은 기술의 보석이다. 그것을 다듬는 데에도 타산지석이 필요하다. 기존의 기술이 가진 한계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발명이다. 타산지석이 기존 기술이기에, 그들에 내재된 기술적 문제는 발명의 동기를 유발하는 방아쇠의 역할을 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수단은 다른 타산지석 기술들에서 빌려와야 한다. 타산지석 기술에서 필요한 기술적 요소들을 골라 짜맞추어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발명이 완성된다. 그러니까 타산지석은 발명의 동기와 수단을 제공하는 풍부한 자원의 밭이다.
타산지석은 거인의 어깨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말이다. 이처럼 남의 어깨에 오르면 세상을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다. 타산지석 기술의 어깨에 오르는 것을 학습이나 벤치마킹이나 부른다. 그를 통해 발명자는 기술적으로 편승하거나 성장하여 새로운 통찰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타산지석은 거울이며 잣대이다. 모든 가치는 다른 존재와의 비교에 의해 평가된다. 기술이나 발명의 가치도 다른 것과 비교된다. 세상에 어떤 기술이 널려 있는지도 모르고 내 것만을 홀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흰머리 돼지를 자랑스럽게 여긴 요동 사람의 어리석음이다. 내 것이 타산지석에 비해 더 아름답고 희귀한 것임을 증명하여야만 귀한 대접 받을 수 있다.
모든 타산지석이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허로 등록된 타산지석은 숨겨진 부비트랩과 같이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니 어디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잘 파악해두어야 한다. 타산지석 특허의 인계철선을 건드리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경영자의 의무이다. 그 의무를 유기한 경영자는 전쟁터에서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과 같다.
우리는 누구나 작든 크든 흰머리 돼지 즉 요동지시를 품고 산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삶의 활력이나 자부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요동지시는 헛된 것이다. 그 헛된 착오상태는 항상 타산지석을 넓게 파악하고 깊이 고려하고 있어야만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타산지석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의 시선을 과도히 의식하면 삶이 고단하고 자존감을 지키기도 어렵다. 요동지시와 타산지석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중용의 지혜가 필요하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580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