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서관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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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성원 작성일22-02-28 15:55 조회9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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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
“도서관에서 음식을 먹지 말아 주세요. 개미들이 들어와 책읽기를 배워 너무 똑똑해지게 됩니다. 지식은 권력이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죠. 그러면 개미들이 사악해져서 세계를 정복하려들게 됩니다.” 미국의 어느 도서관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라고 한다. 참 유쾌한 설득 아이디어다. 그 유쾌함을 잠시라도 누렸다면 안내문의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굳이 하려들지는 않을 듯하다.
"잠깐만! 하드디스크는 잘 지우셨나요?" 일본의 한 자살명소에 붙어 있는 팻말이다. 절망에 빠져 삶을 스스로 정리하러온 사람이 저 팻말을 보고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된 내용이 걱정되어 뜨끔한 마음이 들거나, 그래서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면, 하다못해 팻말의 재치에 잠시 미소를 짓게 된다면, 저 팻말은 대성공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 능청스런 문구는 필시 여럿 발길을 되돌렸을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개의 금지 표식이나 “~을 하지마!”라는 안내는 대중에 대한 경고나 명령이다. 이런 고압적인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함께 불유쾌한 정서를 확산시킨다. 자유의지에 따른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 강제적으로 따름을 강요하기에 그렇다. 이런 부정적인 언어는 다른 부작용이 있다. 사람들의 사고를 부정적인 프레임에 가두어 부정해야할 대상을 도리어 더욱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코끼리가 더 많이 떠오르게 되는 이치다. 한때 어느 대통령 후보가 방송에서 ‘나는 누구의 아바타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오히려 그 후보에게 ‘누구의 아바타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어 버렸던 일도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도서관의 ‘개미’ 이야기나 자살명소의 ‘하드디스크’ 착상은 그 뛰어난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그 궤변과 재치는 보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 은근히 자발적인 절제를 유도하고 생각을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킨다. 부정적인 감정의 유발 없이 기분 좋은 방법으로 은근히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설득의 예술이다.
신하가 군주를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그것을 간언(諫言)이라 한다. 간언의 종류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인용하여 이렇게 소개한다. “첫째는 휼간(譎諫)으로서 궤변으로 군주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당간(戇諫)으로서 우직하게 꾸밈이 없이 간하는 것이고, 셋째는 항간(降諫)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간하는 것이고, 넷째는 직간(直諫)으로서 거리낌 없이 간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풍간(諷諫)으로서 풍자로 비유하여 간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앞의 ‘개미’나 ‘하드디스크’에 비유한 설득은 기발한 궤변으로 간하는 휼간에 해당하거나 풍자로 간하는 풍간에 가깝다.
안자춘추에는 ‘안자논죄(晏子論罪, 안자가 죄를 논하다.)’라는 매우 재미있는 휼간 사례가 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사냥을 좋아하여, 촉추(燭鄒)라는 사람에게 새를 기르게 하였는데 그가 새를 잃어버렸다. 제경공이 화가 나서 그를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안자(晏子)가 "촉추는 죄가 셋 있으니, 그를 그의 죄에 맞게 논죄한 후에 죽이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제경공이 허락하자 안자가 그의 죄를 물었다.
"촉추! 너는 군주의 새를 관리하면서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다. 우리 군주로 하여금 새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니 이것이 두 번째 죄다. 제후들로 하여금 우리 군주가 새는 중하게 여기고 선비는 가볍게 여긴다는 소리를 듣게 하니 이것이 세 번째 죄다." 라고 하고, "이제 촉추의 논죄가 끝났으니 이 사람을 죽이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제경공은 "죽이지 말라! 과인이 그 가르침을 듣겠다." 하였다.
이처럼 지혜로운 간언의 본질은 고급 유머다. 로버트 프로스트 “유머는 가장 매력적인 비겁함이다.”라고 하였다. 유머는 정면대결을 피하면서 그럼에도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약은 대처 요령이라는 뜻이다. 그처럼 휼간이나 풍간도 지극히 매력적인 약은 간언 전략이다. 군주나 고객과의 정서적인 충돌은 교묘히 피하면서도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룬다. 그리하여 모두가 기분 좋게 이기는 해결을 도모한다. 그런 영리하고도 유쾌한 설득이라면 언제라도 얼마든지 기꺼이 당해주고 싶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593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
[허성원 변리사 칼럼] #62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기술탈취에 관한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최근 한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받아 자신의 특허로 등록받은 일로 거액의 과징금을 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처럼 기술탈취는 주로 우월적 지위의 큰 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부정하게 입수하여 유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큰 기업은 납품 거래 등을 위해 승인도면, 매뉴얼, 설비 목록 등의 기술 자료를 요구한다. 기술이란 것은 일단 전해지고나면 정보의 성질상 결코 탄력적으로 원상복귀될 수 없다. 매사가 뜻대로 순조로우면 다행이지만, 계약 등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제공된 기술을 상대가 임의로 사용하거나 다른 기업에 유출하여 유용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피해 기업은 계약 실패의 실망에 배신감까지 얹어 고통을 겪게 된다.
"옛날 진(秦)나라 군주가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호사스런 예물과 함께 화려하게 차려 입힌 시녀 70명을 딸려 보냈다. 진나라에 이르자 진나라 공자는 그 시녀들만 아끼고 공녀는 천대하였다. 공녀가 아니라 시녀들만 시집 잘 보낸 꼴이 된 것이다. 초나라 사람이 정나라에 가서 구슬을 팔고자 하였다. 목란(木蘭)으로 만든 상자에 계초(桂椒)의 향기를 더하여 주옥과 붉은 구슬로 장식하고 비취를 새겼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 샀을 뿐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 결국 구슬이 아니라 상자만 잘 판 꼴이 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매독환주(買櫝還珠,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다)'라는 고사이다. 공녀 혹은 구슬이 돋보이도록 그들에 부수된 시녀와 상자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런데 상대가 겉치레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정작 실체인 공녀와 구슬의 의미나 가치를 상대에게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원한 바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공들인 시녀와 상자도 헛되어 빼앗겨버렸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품을 잘 팔기 위한 것이다. 좋은 기술은 더 강한 시장경쟁력과 더 큰 부가가치를 보장한다. 기술은 내 제품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니, 제품을 빛나게 장식하는 보조적 요소이다. 매독환주의 고사에 비유하면, 제품은 공녀나 구슬에 해당하고, 기술은 그 제품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녀나 상자와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기술탈취는 매독환주 고사와 닮았다. 팔아야 할 제품은 제대로 팔지 못하고 그를 부각시키기 위한 기술만 빼앗기는 상황이다.
기술탈취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적시에 특허를 취득하는 것이다. 특허에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라도 적절한 비밀관리 조치를 취해두면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영업비밀 보호에서는 ‘비밀관리’가 생명이다. 대부분의 영업비밀 분쟁은 ‘비밀관리’의 적정성 여부로 희비가 엇갈린다. ‘비밀관리’는 그야말로 업무상 관리 노력이다. 적절한 주의와 관심만 기울인다면, 필요할 때 제도와 기관의 협조를 받아 용이하게 대비할 수 있다. 그래서 기술탈취 예방의 명확한 키워드는 유비무환이다.
기술탈취의 본질은 ‘배신’에 있다. 자료를 받은 쪽이 그것을 제공한 쪽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렸기에 일어나는 일이 기술탈취이다. 귀중한 기술 자료가 오고갈 때는 나름 거래관계의 신뢰가 이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기술이란 원래 휘발성이 강한 것이다. 아무리 신비롭고 비밀스런 기술이라 하더라도 일단 보고 이해해버리고 나면, 그 전까지 품었던 신비감이나 존중심은 사라지고 그저 나도 아는 보통 기술이 되고 만다. 바로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신뢰가 없이는 기술정보를 공유하기 어렵고, 신뢰가 있기에 배신 즉 기술탈취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술탈취의 피해로 인한 진정한 고통은, 그것이 적으로부터 당한 것이 아니라 신뢰관계 즉 믿었던 비즈니스 파트너의 배신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가까운 친구가 가까운 적이 될 수 있다.’는 속담을 기억하여야 한다.
여하튼 모든 귀중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지킬 일차적인 책임은 그 주인에게 있다. 비밀은 언제나 자신을 통해 유출되는 법이니, 가장 중요한 경계 대상은 자기 자신 혹은 우리 편이다. 지혜로운 자만이 스스로로부터도 비밀을 지킬 수 있고, 어리석은 자들이 비밀을 잃고 나서 남들을 원망한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있다. '두 종류의 비밀이 있다. 하나는 적으로부터 지킨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으로부터 지킨 비밀이다.' '훔친 죄가 하나라면 잃은 죄는 열이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608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