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화학 vs SK이노 ‘배터리 소송전’
- 배터리 기술 전략적 가치 커져… 조속합의 필요 지적
영업비밀 침해 여부가 핵심
LG “기술 문서 다운로드 확인”
SK “기술·생산방식 서로 달라”
18개월간 국내외 분쟁 10건
ITC, 내달10일로 판결 연기
합의금, 수천억 ~ 수조원 추정
업계 “합의로 갈 개연성 높아”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반도체, 스마트폰에 이어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배터리 기술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격화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은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전 세계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다투는 측면이 강하다. 이번 소송전의 본질은 좁게 보면 ‘인재 유출에 따른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지만, 넓게 보면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력 경쟁’이다. 국내와 미국에서 동시에 맞붙은 배터리 소송전은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다음 달로 최종 판결을 재차 연기하면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소송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두 회사가 첨예하게 맞서는 소송전 배경과 쟁점, 진행 추이, 산업적 여파 등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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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이노베이션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사옥. 연합뉴스 |
① 양사 배터리 소송의 발단은
전기차 배터리 기술 유출과 특허 침해를 둘러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은 ‘인력과 영업비밀 빼가기’ 논란에서 비롯됐다. 본격적인 소송전은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2년간 연구와 생산 등 각 분야에서 핵심 인력 100여 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해 갔고, 이 같은 인력 빼가기로 인해 배터리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LG화학은 이에 대한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이 인력 채용 당시 이력서에 연구프로젝트, 참여원 이름 등을 작성토록 한 점, 면접에서 지원자가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상세히 발표하도록 요구한 점 등을 들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자발적 이직이었으며 LG화학과 기술개발 및 생산방식이 달라 기술유출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SK이노베이션은 특히 자기소개서 제출과 면접은 경력직 채용 시 지원자 역량 검증을 위해 통상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또 임직원의 이직은 연봉 등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② 지난 1년 6개월간 소송 경과는?
양사 배터리 소송전은 LG화학이 지난해 4월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미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5월에는 국내 경찰에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맞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밝혀 달라는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와 함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같은 해 9월엔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와 연방지방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를 제소했다. 이에 LG화학 측은 같은 달 ITC·연방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양사가 1년 6개월간 국내외에서 진행한 소송은 총 10건이다. 양사 분쟁의 핵심은 ITC 소송이다. ITC는 LG화학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 올해 2월 예비판결을 내렸고 4월 SK이노베이션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재검토를 결정했다. ITC는 소송의 최종 판결을 지난달 5일로 예정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같은 달 26일로 늦춘 뒤 다시 12월 10일로 연기했다.
③ 영업비밀 침해·특허침해 입장 차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전에서 핵심은 영업비밀 침해가 실제 있었는지 여부다. LG화학은 자사 인력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개인당 400여 건에서 많게는 1900여 건의 핵심 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연구·개발비가 LG화학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도 영업비밀 침해의 근거로 들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을 침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한다. 양사의 배터리 기술과 생산 방식이 다르고, 이미 SK이노베이션의 핵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굳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양측은 특허 소송전에서도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지난해 9월 “LG화학이 ‘994’ 특허를 침해하는 배터리 제품을 팔고 있다”며 ITC에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LG화학은 오히려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추가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994 특허와 관련해 LG화학은 “출원 이전에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선행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자사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으면 994 특허 출원 즉시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④ ITC가 최종 판결 미룬 배경
ITC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최종 판결을 미룬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업계는 ITC가 최종 판결을 자꾸 미루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분석한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조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단순히 순연됐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ITC가 미국 대선 등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 시점을 늦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말 ITC 최종 판결이 나오더라도 이후 미 연방항소법원 소송, 델라웨어주 손해배상청구 소송 일정까지 고려하면 소송전이 몇 년간 더 이어질 가능성도 상당하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 최종 판결은 내년 7월 19일,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 관련 판결은 내년 11월 30일로 각각 예정돼 있다. 일정대로 소송 절차가 진행될 경우 ITC에 걸려 있는 모든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까지 지금부터 최소 1년 이상 소요된다는 얘기다.
⑤ ITC의 최종 판결 시나리오는
ITC 판결과 관련,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먼저 지난 2월 예비판결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 제품의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이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내년 완공 예정인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생산 공장 건설부터 차질을 빚게 된다. 두 번째는 ITC에서 예비판결을 인용하되, 수입금지의 판단 기준인 공익과 관련해선 별도 공청회 등을 활용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미 소송 과정에서 양사의 고객사 및 공장을 유치한 주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이 ITC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세 번째는 ITC가 예비판결을 뒤집고 수정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조사한 후 최종 판결을 내린다. 만약 재조사 후에도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미 연방법원 등에서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⑥ 소송이 왜 미국 ITC에서 진행되나
글로벌 기업들이 ITC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이는 재판 전 분쟁 당사자 간 보유 증거를 공개하는 ‘증거개시(Discovery) 절차’와 ‘절차의 신속성’이다. 증거개시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절차다. 증거개시 절차 과정에서 영업비밀 관련 자료의 경우에는 법원의 강력한 ‘비밀보호명령(Protective Order)’에 따라 상대방 당사자나 제3자에게는 열람·공개가 금지된다. 해당 법원과 소송대리인(접근 인원, 로그 기록 관리) 등 법에 의해 허가된 자에게 소송 목적에 한해서만 열람이 한정되는 보호조치를 받게 된다. 미국 ITC 소송에 걸리는 시간은 법원의 절반가량이다. 제소 시작부터 조사개시 결정, 사실 증거개시(Fact Discovery), 전문가 증거개시(Expert Discovery), 청문(Hearing), 예비결정, 최종결정(즉시 효력 발생) 등 일련의 절차가 1년 6개월 정도면 마무리된다. 통상 법원 소송은 3∼4년이 걸린다. 이 같은 제도적 차이 때문에 신속하게 피해를 입증해 법적으로 구제받으려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내 소송에 집중하는 것이다.
⑦ 조기 패소 판결 때 미치는 파장
두 회사가 12월 10일 이전에 합의해 파국을 맞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조기 패소 결정이 확정되면 배터리 셀과 관련 부품을 미국으로 들여올 수도, 미국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수도 없다. 미국에 수조 원을 들여 짓고 있는 조지아 공장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SK이노베이션과 공급 계약을 맺은 포드와 폭스바겐이 ITC에 공문을 보내 “SK이노베이션 공장이 무산되면 수천 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으니 SK이노베이션에 수입금지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업계는 자칫 국내 기업 간 갈등이 중국과 일본 업체에 사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에서는 분초 단위의 경쟁이 이뤄지는 만큼 양사가 소송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 한국 배터리 사업을 뒤처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소송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 경쟁사들의 지식재산권 침해, 인력 빼가기 행태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⑧ 제3자 중재 가능성과 합의금 규모는
ITC 최종 판결까지 한 달가량 앞두고 양측은 합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합의금 규모를 놓고 양측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주요 소송이 천문학적 소송비를 떠안고 양측 합의로 끝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터리 소송전도 합의로 일단락될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업계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지급해야 할 합의금 규모가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LG화학은 영업비밀 유출에 따른 피해액과 배터리 기술력의 전략적 가치 등을 따졌을 때 수조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반해 SK이노베이션은 수조 원 규모의 합의금에 대해 “아예 배터리 사업을 포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합의 과정에서 정부 등 제3자가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칫 외부 변수나 외압에 영향을 받아 합의를 했다는 논란이 일 수 있어서다. 이는 양측에도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⑨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전 역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분쟁의 역사는 깊다. 양측은 10년 전부터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특허·기술유출 갈등을 빚으며 소송전을 이어 왔다. LG화학은 2011년 당시 SK이노베이션이 세라믹 코팅 분리막의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SK이노베이션은 특허심판원에 LG화학 특허 관련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이듬해 특허심판원은 LG화학의 특허에 대해 무효를 결정했고 LG화학은 해당 심판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특허법원에 제기했다. 특허법원은 2013년 LG화학이 제기한 무효심결 취소 소송을 기각했다. LG화학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2014년 양사 합의가 진행돼 소를 취하했다. 양사는 그해 10월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분리막 특허와 관련한 모든 소송·분쟁을 종결했다. 당시 작성한 합의서에는 “앞으로 10년간 국내외에서 현재 분쟁 중인 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등록 제775310호)와 관련한 특허침해금지나 손해배상 청구 또는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동안 잠잠했던 양측의 소송·분쟁은 지난해 배터리를 둘러싼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계기로 다시 불붙었다.
⑩ 글로벌 기업간 ‘세기의 특허소송’
지난해 미국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애플과 퀄컴이 2년간 소송액 최대 27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하는 ‘세기의 특허싸움’을 종결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스마트폰 제조사인 애플은 통신 모뎀 칩을 공급하는 퀄컴이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로열티를 부과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반면 퀄컴은 로열티 부과방식에 문제가 없다며 로열티 지급계약을 위반한 애플이 70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맞소송을 냈다. 합의 결과 애플은 다시 퀄컴의 모뎀 칩을 공급받게 됐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4년간 끌어온 특허 소송을 미국을 제외한 8개국에서 취하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당시 애플이 미국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 시작이다. 삼성전자도 맞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양사 모두 타격을 받았다.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1001031703024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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