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 [ 특허 ] 소맷자락이 길면 춤이 아름답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허성원 작성일21-01-08 11:29 조회1,59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소맷자락이 길면 춤이 아름답다
야린 물미역이 아침 밥상에 올라왔다. 액젓장으로 쌈을 싸서 입에 우겨 넣는다. 입 안에 가득 찬 부드러운 감촉과 바다 향기로 행복감은 극치에 이른다. 이 건 거부할 수 없는 밥도둑이다.
‘쌈은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먹는 방법’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다(‘유배지에서 쓴 편지’). "단 한 가지 속여도 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라고 그 의미를 부연하셨다. 쌈은 거친 속재료 음식을 매끄러운 겉재료로 싸서 맛나게 먹도록 해주어, 힘든 시절 굶주림을 견디게 하는 삶의 지혜라 여기셨다.
‘쌈’은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서도 많이 이용된다. 제품이나 서비스와 같은 실질적인 속재료도 중요하지만, 포장, 디자인, 광고, 홍보 등과 같은 장식적 겉재료가 실제에서는 소비자의 판단력이나 구매력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대의 마케팅이다. 속재료의 실질에만 집착하여서는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이 시대 젊은 고객들의 선택을 기대할 수 없다.
기업의 ‘쌈’ 비즈니스에 있어, ‘특허’는 특히 중요한 소재이다. ‘기술을 독점하는 권리’라는 특허 본연의 권능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특허는 그 내용의 여하와 상관없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그 건수와 같은 겉보기 정보만으로도 현실 비즈니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허 데이터는 그 자체로서 경쟁사와 직관적으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허를 가진 회사와 갖지 못한 회사가 대비되는 상황이면 누가 경쟁력이 강할 것인지 쉽게 단정된다. 그리고 특허를 1건, 10건 혹은 50건 각각 보유한 회사들을 상대 평가할 경우라면, 기술적 신뢰도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 것인지는 자명하다. 이처럼 특허는 기업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매우 효과적인 '쌈' 재료가 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밥상의 '쌈'은 단순히 겉치레 속임수가 아니다. 그 속에는 아내의 사랑과 정성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특허의 '쌈'에도 단순히 과시적 장식효과를 초월하는 특별한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맞선정장론’으로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맞선 자리에는 누구나 정장을 잘 차려 입고 나간다. 이때 정장은 상대에게 자신의 매력을 잘 보이기 위한 겉포장 ‘쌈’의 기능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상대에 대한 예의’이다. 총각 시절 현장에서 일하다가 회사 작업복 차림으로 급히 맞선 자리에 나간 적이 있었다. 상대는 시종 시들한 반응이었다. 뒤에 어머니를 통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복장으로 나왔느냐’는 상대의 항의를 듣고, 단정한 옷차림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의 표현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특허 보유의 의미도 그와 같다. 장식적 외관의 이면에는 고객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다하는 성의가 내재되어 있다. 특허는, 고객에게 더 나은 기술로 더 싸고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결과인 동시에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 건의 특허도 없이, 자신의 기술력이 우수하다거나, 고객을 위해 부단히 연구개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건 그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밥상에서든 기업에서든 모든 ‘쌈’은 결국은 상대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 즉 사랑이다.
소맷자락이 길면 춤이 아름답다(장수선무長袖善舞 _한비자). 승무나 탈춤은 그 율동이 크거나 번거롭지 않지만, 긴 소맷자락을 사용하여 큰 볼륨감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만들어낸다. 특허는 기업에게 있어 그런 ‘긴 소맷자락’과 같다. 특허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아름다운 비즈니스 춤사위를 연출하는 기업이 많다. 이왕이면 그 소맷자락이 길면 길수록 춤은 더욱 아름답다.
귀사의 ‘소맷자락’은 얼마나 긴가.
(경남신문 2020. 12. 23 게재)
출처: https://www.dotomari.com/1365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