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문지방을 높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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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성원 작성일21-04-09 08:34 조회9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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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문지방을 높이게 하라
구두닦이는 구두에서 그 주인의 인생을 본다고 한다. 변리사는 기업의 특허 현황을 보고 그 회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늠한다. 특허는 기업의 핵심역량이기에, 주력 품목의 변화, 기업의 비전 혹은 시장지배력 등이 그곳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허는 기업의 창조역량이기도 하다. 특허출원의 추이를 보면 기술 개발에 대한 기업의 의지와 그 방향을 알 수 있다. 또 특허의 발명자들로부터 핵심 기술 인력을 파악할 수 있다. 발명자가 다양하면 그 회사의 집단창의력은 건강하다. 그런데 대표이사나 연구소장 등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그들의 유고 시 그 회사의 창조력이 지속되지 못할 우려가 있어 불안하다. 집단창의력과 관련하여, 경영자들은 소속 연구원들의 열정이나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호소한다.
춘추오패 중 일인인 초장왕은 나라를 잘살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물류가 효율적이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이 끄는 낮은 수레가 사용되었다. 그래서 초장왕은 말이 끌 수 있도록 수레의 높이를 높이라는 명령을 내리려 하였다. 이에 재상 손숙오가 간하였다. "법령을 자주 내리면 백성이 따르기 힘듭니다. 꼭 수레를 높이고자 하신다면, 대문의 문지방을 높이게 하십시오. 수레를 타는 군자들은 수레에서 자주 내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장왕이 이를 허락하니, 반년이 지나 백성들은 스스로 수레를 높였다.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의 이야기이다. 낮은 수레는 바퀴가 작아 대문의 높은 문지방을 넘을 수 없어 수레를 탄 사람이 매번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부득이 바퀴를 키우니 자연스레 수레가 높아져 말이 끌기에 적합하게 된다. 결국 문지방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셈이다.
‘문지방 높이기’는 일종의 ‘넛지(nudge)’이다. '넛지'는 리차드 탈러의 동명 저서에 나오는 말로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가 좋은 사례이다. 이용자들은 무의식중에 파리를 겨냥하게 되고, 그 덕에 소변이 밖으로 튀지 않아 소변기의 청결이 유지된다. 문지방 조치도 그와 같다. 온 나라의 수레를 일거에 높이라고 하였다면 사회적 저항이 컸을 것이다. 비교적 부담없는 문지방을 고쳐 나라의 수레들이 높여졌다.
우리나라는 특허출원 및 하이테크 제품 수출 분야에서 공히 세계 4위의 기술 강국이다. 주요 미래 기술 분야의 특허출원에서도 중국과 미국에 이어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세계 3위이다. 그런데도 아직 과거의 기술 열등감에서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하여 그런 열등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역시 ‘부드러운 유도 정책’ 즉 직무발명제도 덕분이다. 90년대에 대기업들은 연구원들에게 연간 여러 건의 발명을 의무화하여,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동시에 보상금도 지불하였다. 승진과 보상이 발명에 달려있으니 연구원들의 발명 노력은 절실한 일상이 되었고, 그들을 적극적인 발명가로 만들었다. 그 결과 특허출원이 대폭 증가하여, 90년 대 중반에는 주요 대기업들이 한 해 2만 건 이상 출원으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IMF 이후 자연스럽게 질적 관리로 전환되게 되고, 그에 따라 연구원들의 창의력은 더욱 정순하고 그 깊이가 더해진다. 그 발명들이 누적되어 지금 기업과 국가의 기술력이 되었다.
모든 리더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 변화를 위한 길을 찾아내어 조직원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지혜로운 리더는 명령이나 강제 없이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조직원의 자발적인 변화와 행동을 유도한다. 직무발명제도는 비교적 작은 유인책으로 연구원들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를 통해 기업은 경제적으로 기술력과 경쟁력을 무장할 수 있는 상당히 효율적인 유도 정책인 동시에 기업 문화이니, 가히 지혜로운 리더가 마땅히 취하여야 할 선택이라 할 것이다.
기업의 성과는 개인의 열정이나 역량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결과이다. 열정이나 역량은 수시로 온도 변화를 겪지만, 조직 문화는 모든 소속원들의 열정을 항상 뜨겁게 유지한다. '좋은 의도의 부드러운 개입'은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든다. 소속원이 자신의 창의력을 자발적으로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조직 문화’를 우선 구축하라. 그러면 건강한 집단창의력에 의해 샘솟듯 솟아나오는 무한한 창조역량을 기업은 누리게 될 것이다.
출처: https://athenae.tistory.com/1012 [허성원 변리사의 특허와 경영이야기]